2019년 6월 4일 화요일 사회와 교회가 미성년자와 약자들에 대한 성학대와 성폭력을 밝혀내려고 노력하는 이 시기에, 저와 우리 형제들도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수십년 전부터 매주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오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과 성인들을 떼제에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떼제를 찾는 젊은이들과 그들의 가족, 인솔자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신뢰를 잘 알고 우리의 책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신념을 존중하고 모두의 안전과 존엄성이 유지되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가장 나은 조건에서 손님맞이가 이루어지도록 항상 노력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 참가자들 사이, 젊은이 사이 혹은 젊은이와 성인 사이에서, 인격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알게 되면 우리는 피해자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책임있는 사법 당국과 교회 (...)
2020년 6월 22일
세계가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이 특별한 상황에서 우리는 1970년 부활절 떼제에서 “기쁜 소식”이 발표된 것을 기억합니다. 1974년에 개최된 “젊은이들의 공의회”를 준비하는 첫 단계였습니다.부활절을 보름 앞두고, 모든 대륙에서 스무 명의 젊은이들이 떼제로 와서 로제 수사와 함께 이 발표문을 다듬었습니다. 청년들은 부활절 오후 떼제의 화해의 교회에서 이것을 발표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오셔서 축제를 열어 주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가 권력의 수단을 다 벗어버리고 모두와 나누려 하며 온 인류를 위해 가시적인 친교의 장소가 되는 교회의 봄날을 우리에게 마련하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화해의 길을 열어 가도록 우리에게 충분한 창의력과 용기를 주실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생명을 바칠 수 (...)
2020년 4월 20일
1940년 로제 수사가 스물 다섯의 나이로 고향인 스위스를 떠나 어머니의 모국인 프랑스로 가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여러 해 동안 결핵을 앓으며 오래 요양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는 공동체 설립의 부르심이 자라났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 그는, 외할머니가 1차 대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전쟁으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가 정착한 작은 마을 떼제는 당시 프랑스를 2등분한 분계선에 아주 가까왔고 전쟁을 피해 나오는 난민들을 보호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리옹에 있는 로제의 친구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떼제의 주소를 주기 시작했다. 떼제에서 로제 수사는 약간의 대출금으로 오랫동안 비워있던 집을 부속 건물과 함께 구입했다. 그는 누나 쥬느비에브에게 떼제에 와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들이 맞이한 난민들 중에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물자가 많이 부족했다. 수도물로 없었고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다. 음식도 단순했고 근처 정미소에서 싸게 구입한 옥수수 가루로 죽을 끓여 먹었다. 자신이 맞이해 (...)
2008년 5월 9일
오늘날 떼제 공동체는 30개국 출신 1백여명의 형제들로 이루어지는데 그들은 가톨릭 및 다양한 개신교회 출신이다. 그들 삶 자체가 갈라진 그리스도인들과 민족들 사이에 화해의 구체적인 징표로서 "공동체의 비유"를 보여준다. 떼제의 형제들은 어떤 기부나 선물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일해서 번 것으로 생활한다.가족의 상속을 받게 될 경우 자신이나 공동체를 위해서 쓰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로 돌린다. 일부 형제들은 세계의 가난한 지역에서 고통받은 사람들 가까이 평화의 증인으로서 살아간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있는 작은 우애공동체에서 수사들은 주위 사람들의 삶의 조건들을 나누며 가난한 이들, 거리의 아이들, 재소자들, 임종자들, 애정의 단절과 인간적으로 버림받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려 애쓴다. 해를 거듭하면서 온 대륙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제로 와서 매주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다. 7백년 전 창설된 가톨릭 국제 공동체인 성 안드레아 수녀회, 폴란드의 우술라 수녀회 그리고 성 빈센트 드 뽈 수녀회의 수녀들이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책임을 일부 나누어 맡고 있다. 교회 (...)
2008년 3월 20일
무엇보다 먼저 만남이 번세계적인 신뢰의 순례의 일환으로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열린 유럽 모임 동안 크로아티아 가정들은 닷새 동안의 기도와 나눔을 위해 이곳으로 온 세르비아 청년들을 맞이했습니다. 두 민족을 갈라 놓았던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보다 앞서 리스본 모임에 참가한 청년 한 사람은 12월 31일 밤에 열린 "민족들의 축제"에 대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자정이 되자 모두들 끌어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온갖 나라 말로 서로 복된 새해를 빈다는 말을 전하면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찾아 나섰다. 커다란 팡파레 주위에서 우리는 함께 노래했고 모임에 대해, 환대에 대해 또 그간 주고 받은 선물에 대해 서로에게 감사했다.” 신뢰의 순례는 무엇보다 우선 만남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다. 공동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있다. 나눔과 환대를 통해 모두들 장벽과 차이를 넘어 서로를 받아들이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내적 생활과 인류의 연대 “우리는 여러 나라의 청년을 함께 모으는 (...)
2008년 2월 12일
독일 출신으로 1984년부터 프랑스 국적을 가진 알로이스 수사는 1954년 6월 11일 바이에른 주에서 났지만 슈투트가르트에서 자랐다. 가톨릭 신자. 부모는 옛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서 자랐다. 1974년 공동체의 기도복을 받기 전까지 여러 차례 떼제를 방문한 다음 자원 봉사자로 몇 달 지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떼제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떼제의 자원봉사자로 그 뒤로는 수사로서, 동부 및 중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했다. 1953년 발간된 떼제의 규칙에 따라 로제 수사는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1998년 공동체의 연례 회의 동안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연로한 로제 수사는 2005년 1월, 금년중으로 알로이스 수사가 원장직을 승계할 것이라고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발표했다. 알로이스 수사는 최근 여러 해 동안 떼제에서 열리는 국제 모임과 유럽 여러 도시에서 매년 개최되는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을 주관했다. 음악과 전례에 특히 관심을 가진 그는 언제나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동반하는 데 많은 시간을 (...)
2005년 9월 7일
새로운 형제는 몇 년 간의 준비를 거친 다음 공동체에 일생토록 투신합니다. 여기 실린 글은 이 서약 때 사용됩니다.사랑하는 형제여, 그대는 무엇을 청합니까? 하느님의 자비와 내 형제들의 공동체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길 빕니다.하느님의 자비에 몸을 맡기는 형제여, 그대는 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대의 보잘것없는 신앙을 도와주실 것이며 그대와 함께 이 길로 들어와 그대를 위하여 언약을 이행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내나 자녀나 토지를 버리고서, 현세에서 박해와 더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고 또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인간의 이치에도 반대되는 길입니다만, 그대는 눈으로 봄으로써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으로써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자는 그것을 도로 찾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가십시오.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먼저 (...)
2005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