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8일
“2020년 제안”
2019년 9월에 우리는 케이프타운에서 “신뢰의 순례”의 새 여정을 걸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비록 종족 사이에 아직도 깊은 분열을 간직하고 있지만, 25년전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과 비폭력적인 변화의 힘을 세상에 보여준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1천여 가정이 문을 열어 젊은이들을 맞이한 것 자체가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다른 종족과 종파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고 우리가 사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길을 떠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실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우리 주위에서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생명의 여러 징표를 찾아 냅시다. 이전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제안들에 관심을 기울입시다. 비록 그것들이 늘 (...)
2019년 3월 1일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3:2)
수십 년 전 떼제에서 시작한 신뢰의 순례는 끊임없는 젊은이 모임으로 이어져 오늘도 여러 대륙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 모임 때마다 참가자들은 물론 자기 집에 그들을 맞이하는 이들에게도 환대의 체험은 가장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우리는 2018년 8월에 홍콩에서 열린 젊은이 모임에서 환대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아시아 전역과 다른 대륙에서 온 청년들이 참가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과거의 분쟁과 역사의 상처로 치유가 필요한 나라들도 많았습니다.
중국 본토 여러 성에서는 7백 명의 순례자들이 왔습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홍콩 가정의 환대를 받은 것은 희망의 징표였습니다.
아시아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 (...)
2018년 1월 22일
지난 여름, 중병을 앓는 젊은 여성이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삶을 사랑해요.” 병 때문에 거동조차 어려웠지만 내면의 기쁨으로 가득찬 그를 보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 뿐 아니라 아름다운 얼굴 표정도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또 아이들의 기쁨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온갖 비극적인 이야기로 점철된 난민 수용소에서조차 어린이들이 있어서 삶은 꽃피어납니다. 그들의 에너지는 부서진 삶이 가득 모인 곳을 충만한 약속의 못자리로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희망을 간직하는데 어린이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요! 아이들이 삶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은 한줄기 빛입니다.
우리는 이런 증거(증언)들을 보면서 2018년 한 해 동안 기쁨에 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기쁨은 단순 소박함, 자비심과 함께 로제 수사가 떼제 공동체의 삶에 핵심으로 (...)
2017년 2월 16일
신뢰의 순례의 일환으로 2016년 9월초 베닌의 코토누에서 열린 모임에는 7500명의 아프리카 청년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 집회의 주제인 함께 - 고립되지 않고 서로 힘을 북돋아주면서 우리 안에서, 우리 주위에서 그리고 인류 가족을 위해서 - 희망의 길을 열어가며 에서 우리는 2017년 한 해 동안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코토누에서 제기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희망을 북돋우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서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성인 자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각자가 지금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국제 정치와 경제 관계에서 더 큰 정의를 열망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소리에 히루빨리 귀기울이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평온히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조건 가운데 (...)
2016년 2월 21일
2015년 한해 동안 떼제에서 우리는 새로운 연대를 살아갈 길을 모색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참으로 긴급한 과제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형태의 이주와 환경, 사회적 고난이 여러 종교의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무력을 동원한 폭력이 비인간적인 이념의 이름으로 끔찍한 파괴를 저지릅니다. 명철한 의식을 지닌 채, 불안이 자아내는 두려움에 대한 저항으로서 우리는 신뢰의 순례를 계속할 것입니다. 연대의 세계화를 고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서로를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폭풍이 휘몰아칠 때에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마태 7 :24- 25).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우리의 삶을 건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복음의 실재인 기쁨, 단순소박함, 자비가 우리의 반석이 될 것입니다. 로제 수사는 이 (...)
2015년 12월 20일
(아래 문서는 "하느님" 대신 "하나님"으로 표기한 것 말고는 같습니다.)
2015년 12월 18일
편지 “새로운 연대를 향하여” (2012-2015) 는 로제 수사의 선종 10주기가 되는 2015년 8월 16일까지 우리 공동의 여정에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땅의 소금"이 되기 위한 네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첫째 제안: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맛을 나눕시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 (마태 5:13)
땅의 소금이 되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이며, 우리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땅의 소금이 됨으로써 우리는 삶의 맛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이들의 삶을 아름답게 할 때 우리 삶은 의미있는 것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수많은 장애물에 직면하여 “계속 애써 노력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면, 아주 적은 양의 소금으로도 맛을 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
2015년 12월 1일
편지 “새로운 연대를 향하여”는 2015년까지 우리의 공동 여정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 사이에 가시적인 친교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네 가지 제안이 여기 있습니다.그리스도는 아무도 내치지 않으시고 모든 이에게 우정을 베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을 따라서 하나의 커다란 우정의 공동체 같은 것을 형성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친교"라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인류의 여러 상처를 치유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어느 민족도 어느 개인도 제외하지 않는 연대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여기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첫째 제안 :지역에서 기도하는 공동체와 함께 합시다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4)
국제 모임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이 우정의 공동체가 가시화됩니다. 하지만 이런 행사는 가끔씩밖에 열리지 않습니다. 각각의 장소에는 비록 아주 작더라도 이 커다란 공동체의 일부인 모임이 있습니다. 믿음
2015년 11월 2일
지난 해 베를린에서 발표된 편지“새 연대를 향하여”는 앞으로 3년 동안 우리가 추구하고 모색하는 바를 뒷받침할 것입니다. 우리는 2013년 한 해 동안 하느님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샘터를 찾는 데 힘쓰려고 합니다. 교종 베네딕도 16세가 제창한 “신앙의 해”도 우리에게 격려가 됩니다. 이 길로 나아가기 위해 여기 네 가지 제안을 합니다.첫째 제안 - 우리의 신앙 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눕시다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통과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질 것입니까? 어디에서 삶의 기쁨을 찾을 것입니까?
이것은 모든 세대 그리고 모든 이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판에 박힌 신앙 형식에 그 답을 다 담아 낼 수는 없습니다.
“만일 하느님(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느님께 대한 물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개인성이 강조되는 것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그것은 개인의 인격과 자유 그리고 자율성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눈에 띄게 자리잡은 사회에서조차 하느님에 대한 신뢰는 점점 덜 당연시되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결심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가까
2009년 2월 19일
2008년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케냐 전역과 여러 아프리카 나라들 그리고 다른 대륙에서 7천명의 젊은이들이 나이로비에 모였습니다. 1995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이후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개최된 떼제의 모임이었습니다. 떼제 공동체가 벌이는 ‘범세계적 신뢰의 순례’의 일환으로 열린 이 모임은 나이로비의 여러 교파의 80여 본당과 개교회의 환대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순례는 민족들 사이의 부족한 교류와 역사의 여러 상처로 인해 지속되는 서로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넘어서 더 형제적인 관계를 맺는데 기여하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55년 전부터 떼제 공동체에서 파견된 몇몇 형제들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아주 가난한 이들과 삶을 나누며 아프리카 대륙에 머물러 왔습니다. 그들은 알제리,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르완다와 케냐에 여러 해 동안 살았고 16년 전부터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의 회교도가 대다수인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성공회 원로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프리카는 십자가와 부활의 가장 깊은 의미가 드러나는 곳이며, 신뢰와 화해가 매일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곳입니다. ....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일뿐, (...)
2008년 3월 21일
1940년 로제 수사가 떼제공동체를 창립하기 위해 제네바를 떠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인류 안에서 평화의 누룩이 되려면 그들 사이의 화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수년 후, 로제 수사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내 할머니께서 삶으로 증거하신 것에 영향을 받은 나는 그분을 뒤따라 그 누구와도 친교를 단절함 없이 내 본래의 신앙과 가톨릭 신앙의 신비를 내 안에서 화해시키는 것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
로제 수사가 열어 놓은 이 길은 간단하지 않고 지혜가 필요하며 우리가 아직도 미처 다 개척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속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져 있으면 복음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교회 모두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한 데 모으지도 않고서 어떻게 세속화와 각 문화간 상호 이해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과제에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갈라져 있으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평화를 모두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끼리, 때로는 같은 교파 안에서조차, 서로 대립하면서 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성경 말씀을 듣고 침묵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2008년 3월 21일
복음서에서 우리는 « 나를 따라 오너라 »는 예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온 삶을 건 투신으로 그분께 응답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우리 모두는 행복한 미래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제약에 묶여있다고 느끼며 그래서 때로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르 1, 15) 우리가 우리 삶의 여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로 거기에서 창조의 역사를 시작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 누구도 이상화한 삶을 꿈꾸며 헤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모두를 받아들입시다.
행복한 미래를 추구한다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 생활이나 사회 안에서 혹은 다른 이들을 위한 투신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용기를 내어 결심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독신의 길을 택함으로써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을지를 자문합니다.
나는 온 삶을 건 선택을 위해 숙고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최대한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 투신 앞에서 그대는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대는 자신을 온전히 (...)
2008년 1월 10일
떼제가 주관한 라틴 아메리카 젊은이 모임이 2007년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 이 도시와 인근 지방 본당 및 여러 가정이 여러 달에 걸쳐 함께 준비한 끝에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볼리비아의 여러 지방은 물론 중남미 모든 나라와 유럽의 몇 나라에서 온 청년7천 명이 참가했습니다. 2008년을 위한 이 ’코차밤바에서 보내는 편지’는 2007년말 제네바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에서 발표되었습니다. 화해, 그 불꽃
우리는 중남미 각국 젊은이들과 함께 볼리비아에 모여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어떤 희망의 길들을 열 수 있을까?” 사회적, 인종적으로 대단히 다양한 볼리비아 사람들은 분쟁을 극복하고 더 큰 정의와 평화를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세상 곳곳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많은 갈등상황은 방치되어버린 역사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불의 앞에서 무력감이 더 커질 때, 어디에서 치유책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코차밤바에 모인 젊은이들은, 다양성이 반드시 분열이나 경쟁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서로를 더 풍요롭게 하고 기쁨을 가져다 줄 약속이 담겨져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1]
볼리비아에서 우리는 화해의 마음으로 (...)
2007년 2월 26일
삼십년 전, 로제 수사는 여러 대륙 출신의 형제들과 젊은이들과 함께 인도의 콜카타(캘커타)에서 얼마 동안 지냈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생활하면서, 버려진 어린이들과 임종자들을 위한 마더 데레사의 활동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그 글을 빠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청년 모임에서 발표했습니다. 그 뒤로 로제 수사는 마더 데레사와 함께 여러 메시지와 책 세 권을 썼습니다. 1976년 캘커타에서 지낸 것을 시작으로 우리 공동체와 인도의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인도 곳곳을 방문한 것, 마드라스에서 두 차례 열린 대륙간 모임, 인도 청년들이 끊임없이 떼제를 찾아오는 것은 이 관계의 여러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캘커타는 인간적 고통과 동시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그럼으로써 빛을 발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캘커타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모임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10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모임에는 6천명의 청년이 참가했는데 그 대부분이 아시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모임은 아시아의 젊은이들과 함께 그들의 대륙을 걸어가면서
2006년 1월 30일
로제 수사님이 선종한 지난 8월 16일 오후, 그는 한 형제를 불러 “내가 부르는 것을 잘 받아 적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려고 애쓰는 동안 아주 긴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인류 가족 안에서 … 넓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만큼… ” 로제 수사님은 너무 기진해서 말을 채 끝내지 못했습니다. 이 말에는 아주 노년에까지 그분을 움직인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넓힌다’고 말씀하려고 했을까요? 그분은 아마도 “모든 인간과 모든 민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라”는 말씀을 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작은 공동체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겸손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통해 이 신비를 드러내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이 세상 도처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이 사명과 도전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선종하기 몇 주 전, 로제 수사님은 밀라노에서 열릴 젊은이 모임에서 발표할 공개 편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또 자신이 이미 써 놓은 글을 다시 손질할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그 상태로 이 (...)
2005년 1월 19일
24개 아시아 말을 포함해 55개국어로 번역된 이 편지는 떼제의 로제 수사가 쓴 것으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에 즈음해 발표되었습니다. 이 편지는2005년 한 해 동안 떼제에서 매주간 개최되는 모임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모임에서 묵상 재료로 쓰입니다.“하느님은 너희를 위해 불행이 아니라 평화의 미래를 마련하신다. 하느님은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하신다.” [11]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폭력의 위협에서 해방된 인류를 열망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계 곳곳에는 또한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우울의 나락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수동적인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 삶은 운명의 장난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회의와 절망이야말로 인간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이 젊은이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불행이 아니라 평화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빛을 그들 주위에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위기와 (...)